산과 여행/지리 설악 제주

설악 한계고성릉에서 음지골로 130616

숲길로 2013. 6. 17. 16:34

 

 

 

코스 : 옥녀탕 휴게소(05:40) - 한계산성(06:20) - 천제단(07:20) - 안산릉 1396봉(09:00) - 안산 갈림(09:30) - 1369봉(10:32) - 1241봉(11:00) - 합수점(12:10) - 백담야영장(오토캠핑장 13:30)

 

(붉은색이 당초 예정코스, 연두색이 실경로)

 

소승폭 구경 좀 하려다 도깨비같은 넘들에게 단속당하고...

옥녀탕 거쳐 한계고성릉 오른다. 

장마 앞두고 연일 텁텁한 유월 하늘 아래 졸음 겨운 눈으로 건너보는 초록의 동색, 도처에 군림하는 쇄국의 왕자들.

푸르딩딩 머나먼 겹겹 산빛이 지나간 시절의 기시감에 상투적으로 엮여드는데

설악도 어지간히 넘보았단 걸까, 비스듬히 시야 비낀 반쯤 낯선 풍경들이 심드렁하기만 하다.

 

활짝 깨어나지 못하는 몸 탓하며 퍽 단조롭구나.. 뱉으려는 찰나, 뚝 떨어지며 솟아나는 벼랑길 면전.

원근 바윗길 잠 깨우며 살기등등 엄습한다. 번갈아드는 물과 바람의 반타작, 공교롭고 공공연한 초록의 협잡질들.  

말없이 고스란히 밀고 나간다. 1396봉 오르니 비로소 다시 태어나는 서북릉 바람 있다.

젖은 머리 말리며 최초의 풍경인양 돌아보니

하지 머잖은 날, 훌쩍 높아져버린 희뿌연 아침이 조금은 민망한 기색이다.

 

안산 등지고 음지골 향하는데, 초여름 아침 젖은 대기 휘저으며 달려드는 비릿한 내음.

희고붉은 꽃들 처처에 피고진다. 육감과 교감 넘나들며 푸르디 푸르게 질펀해져가는 최음催淫의 시절.

귀 막고 눈 감은 채 돌아본다, 네 설악 너머 여태도 피고지는 것들의 희미한 그림자.    

 

 

옥녀탕 계곡 접어든다.

 

희고 미끈한 바위빛, 무딘 아침빛 대신 잠시 눈 씻는다.

 

 

 

 

물 별로 없는 협곡 기어오른다.

 

 

 

 

잠시 휴식, 인원파악 겸하여... 

 

뒤돌아보다

 

한계고성.

복원이라지만, 그 옛날 이 험한 산중에 왜 이리 튼튼한 성을 쌓아야 했을까? 

 

골 버리고 능선 향해 오른다.

 

 

위 설명으로는 이 성벽이 북진하는 왜구 방어선이란 건데...

 

군사전술 까막눈이지만 당최 의아함 가시질 않는다. 

산악전투에 능하지도 않은 왜구들이 한계천과 북천길 대신 저 험한 옥녀탕 계곡을 북진루트 삼으려 했다는 게 쉬 납득되지 않는다.

혹 왜구를 유인하기 위한 매복거점이나 소수의 방어군 상시 주둔지 아니었을까...

헌데 그렇게 보기엔 산성이 너무 길게 이어진다. 꽤 험한 천고도 이상까지 성축 흔적이니, 안산릉 넘으려는 무리에 대비한 방어시설이란 설명이 오히려 그럴듯하다.

여하튼... 그런저런 의문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한계산성이다. 

 

 

능선숲 사이로 심상찮은 설악경이 슬슬 드러난다.

 

 

 

등뒤 남으로도 조망 트인다. 아침빛에 구름 떠나보내는 가리 주걱.

 

구름들, 흩어지는 빛.

밤새 골 깊이 잠겼다 떠오른 걸까?

구름 양으로 보아 바다까지는 아니었을 테고... 강 정도?

 

건너편 능선, 치마바위 쪽에서 뻗어내린 줄기다.

 

산오르는 고도에 따라, 돋아오는 해 높이에 따라 달리 열리는 풍경.

하지만 어쩐지 낯익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새로운 이미지를 삼키고 물들인다. 그 완고함이 현실을 빈약하게 묶어놓는다.

 

진행 방향. 우째 갈길이 솔찮다. 

 

완강함은 저기도 있다. 끈질긴 장엄의 욕망 뿌리치며 끝없이 달아나는 맹목과 무심의 세계.

매순간 다시 태어나는 천상의 구름과 서슬푸른 벼랑들, 그 무엇도 아닌 이름 너머의 것들..

 

하늘길도 아니다. 두 세계를 나누며 합치는 불이문도 아니다.  

 

깍아지른 바위벼랑 펼쳐지며 이어진다. 한폭에 담기지 않는다.

 

 

위 사진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모습.

저 암벽 너머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져 내릴 줄기가 몽유도원도 릿지 아닐까 싶고..

 

자연은 불연속이 없지만 부실한 안목은 이렇게 토막난다.

공포란 것은 어쩌면... 무심하고 무한한 인과세계 자연에 대한 최초의 유기체 반응일까. 

숭고의 바탕 역시 숨겨진 공포일진대, 저 토막냄은 어떻게든 함 맞서보려는 비루하고 졸렬한 전략의 일환일 터. 

 

 

수십길 수직벼랑에서 돌아보다.

주걱봉에서 뻗어나온 능선끝자락, 장수대 하늘벽이 인상적이다. 

 

다른 지점에서 당겨본 하늘벽

 

갈길은 여전히 험하고..

 

한 벼랑 건너 저 벼랑에 밧줄 보인다

 

 벼랑 비켜보는 봉봉들, 하나같이 날카롭다.

저마다 받쳐든 하나씩 하늘, 너머에야 비로소 안산릉.

늘 위에서 저 모습을 굽어보았다.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계의 안산이 그러했다.

거기서 보는 저것들 또한 더없이 날카로웠지만 다만 발 아래서 적막하고 아득했다.

그 모습 보고 있노라면, 나는 나로부터 더욱 멀어지며 낯선 별자리 떠도는 환각에 들곤 했다. 바깥으로서의 산...

산에 든다(入)함은 그러므로 산으로 나는(出) 일.

 

 

아~~~ 하며

평생을 저렇게 산다. 덩달아 아~ 해 본다.

턱이 무겁다. 길어지면 눈물도 조금 날 거다.

고마해라, 싶다가 만다.

이제와서 달리 무얼 어쩌라고...

뱉느니 삼키고 마는 상처.

 

지나온 저 벼랑, 이 벼랑에서 건너본다.

오르내리는 벼랑엔 줄 달려 있지만, 벼랑과 벼랑 사이는 허공이다.

그 틈으로 풍경이 드난다. 아니, 열리고 사라진다.

예전엔 저런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오늘은 왠지 애처러워 보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방금 올라온 벼랑 굽어본다.

밧줄 없는 구간도 상당히 가파른데, 바위 젖었을 땐 썩 위험해 보인다.

 

지나온 능선 돌아보다

 

일행들 , 하나둘 넘어온다.

 

 

 

천제단.

아마 성축과 내력 함께할 성 싶은데, 울나라에서 접근하기 가장 힘든 천제단 아닐까 싶다.

글씨 석자 새겨져 있다는데 살펴볼 요량은 하지 못했다. 그냥 앉아 쉬느라..

 

안산 정상부 일대, 치마바위 고양이 바위 등과 맨 오른쪽에 올라서야 할 1396봉.

이 각도에서 보는 게 조금 낯설긴 하기만, 수차례 올랐던 안산이니 어느 방향에서도 아주 새로운 느낌 들지는 않는다.

풍경은 날로 새롭지만, 완강한 기억은 멀어지면서 더욱 선명해진다. 다채롭게 접혀진 이미지의 기억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계의 안산...  

어쩌면 사로잡힌 그 이미지들. 멀어질수록 지배력 강해지는 추상의 힘.  

 

 

 

다 같아보이지만 하나하나 다 달라서 누구도 욕심내지 않는 꽃, 은 그래서 내 산과는 또다른 경계에 머문다.  

 

오르고 있는 능선 동쪽 건너 바짝 날선 줄기 하나 출렁이며 간다. 날렵하게 치켜올린 봉우리, 미륵장군봉이라는데...

능선 너머 멀리 귀청도 보인다.

 

한 폭에 다 담기지 않아 나누어 담는다.

역시 못마땅한 토막질, 에 나뉘는 건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무한.

틀에 담아 절단내기, 는 문명과 지성의 장기지만 결국 자기도취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거울 들여다보다 나르시시즘에 빠져버린 특이종이 인류 아닐까..  

진화의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계기로서 거울. 

 

하지만 보는 것과 움직이는 것, 중 전자가 먼저라 여기지만 실제론 후자가 더 근본적이다. 본다는 것 역시 유기체 움직임의 일부다.

그러므로 보는 것에 바탕해서 판단할 게 아니라 행동하고 느껴야 마땅하다. 토막난 채 저장되고 재현되는 이미지는 움직이는 몸의 체감으로 검증되고 극복된다. 토막난 풍경은 몸소 오름으로써 온전히 하나로 통합되며 무한해진다.     

 

 

일행중 선두인 저 분의 권유로 나중에 함께 음지골로 하산하게 된다.

 

 

 

안산 암릉을 박진하게 돌아보는 느낌이 좋다. 한 명함 내밀듯한 기암들.

 

 

 

 

 

 꽤 조심스레 벼랑 횡단하는 지점. 자칫하면 영 가는(!) 수가...

물론 반대쪽이 좀 더 안전하긴 하다.

저 분 역시 음지골로 함께 하산.

 

 오르는 능선 끝이 보인다.

 

 돌아보다

 

 

 

 단풍들면 참 보기 좋을...

 

 조심스레 지나왔던 바위, 일행 보인다.

 

 

 

 

 

 

 

 안산릉 올라서니 정향나무(수수꽃다리)향 코를 찌른다. 제철 만나 지천이다.

 

 1396봉 전망대에서.

지고 있는 진달래, 범의 꼬리 등등... 아직 봄꽃 미련 남았다.

 

능선숲은 여름꽃들 기름진 향기 진동이다. 비릿하게 가라앉으며 멀리 따라온다.

붙박이 식물의 저토록 육감적인 한 때.

노쇠해가는 동물의 몸, 피차 실속없이 깊이깊이 들이마시며 간다.

 

푸른 바람, 푸른 하늘..  

걸음마다 묻어나는 푸르름, 펄럭이며 간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진작 거쳐왔을 귀청이 까마득하다.

 

정향꽃 향기 휘날리는 푸른 숲 깊이 깊이 가로지르며 흐르듯 간다. 

바람 휘어지면 덩달아 휘어지는 길..  

 

돌아본다. 그 봄날 진한 빛깔 구슬붕이들 총총하던 바람의 언덕.

진달래 꽃빛따라 저 바위 사이까지 기웃거렸었다...

살진 두꺼비같은 안산은 오늘도 입 굳게 다문채 꼿꼿이 좌정이다.  

 

 

 

 낯선 빛깔, 낯익은 윤곽...

골골 드는 바람이 가차없이 헤집고 뒤집어놓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푸른 잎들.

 

 금줄 넘어 나와..

 

음지골 갈 일행 기다리며 잠깐 요기도 하고...

 

 진행방향 1369봉

 

 능선엔 함박꽃 한창

 

 

 이 미모는 또 뉘신지...?

 

 향기 등등,

식물을 넘어 동물까지 자극하며 질펀한 카니발을 꿈꾸는 최음의 나날..

 

 다시, 1369봉 비탈 암릉 기웃.

 

 1369봉 조망바위에서 돌아보는 안산릉. 위태로운 남쪽과는 전혀 다른 모습.

 

 미끈하게 출렁이는 대승령 너머 가리주걱봉

 

 서북릉 귀청 대청, 그리고 두 뾰족이 화채봉과 공룡릉 1275까지..

 

이 능선, 참 조망 트이지 않는다.

동행없이 혼자라면 길 벗어나 좀 기웃거려 보겠는데 그럴 여건도 아니다. 얌전히 길따라 간다.

1241봉에서 비로소 조망 트인다.

 

 귀청(오른쪽)에서 마등봉(왼쪽)까지.

특히 공룡릉을 펼쳐놓고 서쪽에서 건너보는 지점이니 봉우리 하나하나 뚜렷하다.

공룡릉 뒤로 오징어대가리(삼각형) 화채봉도 눈길 끈다.  

 

 황철봉(왼쪽)에서 대청까지.

흥미로운 지점은 저항령과 그 오른쪽 까칠한 암릉.

 

 

 이후 구간, 좌우음지골 나누는 능선은 전혀 조망없고 숲경관도 대단치 않으니 좀 지루한 편.

걷기좋은 외길따라 내쳐 간다.

 

 좌우음지골 합수지점. 세수하며 땀 식힌다.

 

가문 계절 음지골은 별 볼품없다.

길은 첨엔 왼쪽 조만간 오른쪽 사면따라 이어지는데, 설악산답지않게 너무 편하다(왼쪽으로도 계속 길 이어지지만 상태 불량). 다만 가파른 사면 횡단하며 살짝 조심스런 곳 더러 있다.

굽어보는 골짜기, 소폭포 비스무리한 곳들 보이나 수량도 적고 별 구미 당기지도 않아 그냥 지나쳐간다. 

암 생각없이 휘적휘적 가다보니 도로 머잖은 듯, 폭주 오토바이 소음 들린다. 적당히 씻을 곳 찾으니 그럴싸한 곳 눈에 띈다. 망설임없이 내려선다.  

 

음지골 몇 안되는 볼거리 중 하나인 듯한 작은 폭포, 아래서 시원하게 물 맞으며 땀 절은 몸 씻고..

 

개운한 맨머리로 바람 받으며 룰루랄라~ 간다. 

날머리까지 남은 거리 제법이지만 기복없이 부드러운 길, 다시 땀흘릴 일은 없다.  

 

 날머리 가까워지니 이리 예쁜 길이다

 

날머리 직전  뜬금없어 보이는자작숲도 지나..

무리지어 맺힌 산딸기도 따먹어가며..

 

야영장 앞두고 날머리 시간 기록삼아 똑딱이는 제철의 꽃들.

기록되는 건 시간 뿐만 아니라 계절이기도 하고, 푸른 노역으로 빛나는 누군가의 가장 좋은 한때이기도 하다.  

 

 

오토캠핑장으로 변한 백담학생야영장. 매점에 앉아 일행 기다리는데 한동안 감감 무소식이다.

전화해 보지만 불통 메시지만 들려온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삼십분, 한시간, 또 삼십분..

그늘에 앉아 있어도 별로 시원하질 않다. 캔맥주 마시다가 막걸리 마시다가...

드디어 연락이 온다.

아니오니골로 하산했다는 소식. 다시 오기 싫어서 아니오리,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아니오니라는 그 골짜기?

영문 모른채 다들 뜨악하다.   

온다던 버스는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서지도 않고 휑하니 지나가버린다. 백담주차장에서 되돌려 오겠거니 하는데 역시 아니온다.

덥다, 초조해진다, 부풀대로 부풀어오르는 기다림.

바람없는 설악의 오후...

 

낼모레부터 시작되리란 장마가 문득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