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미륵산 130224
코스 : 주포리(10:20) - 468봉(11:00) - 신선봉(11:40) - 황룡사 능선 갈림(12:00) - 장군봉 - 미륵봉(12:20) - 미륵바위(점심) - 689봉(헬기장봉 13:30) - 미륵산(13:50) - 서향 능선 따라 - 도로(14:30) - 새터고개
(파란 점선 따라 347.5봉 거쳐 하산 예정이었으나 실제론 빨간선 따라 하산).
중부고속도 문경 지나며 차창 너머 보이는 산비탈 눈빛이 연붉다. 물오르는 나뭇가지 그림자 얼비치는 듯.
골과 능선, 붉고 흰 빛의 대비 강렬하지만 바야흐로 붉음이 더 승勝하려는 계절이다.
봄빛 꿈꾸는 이월 햇살이 그런 걸까, 활엽 잔가지 끝이 시방 못 견디게 간지러운 걸까.
평소 관심권 밖에 있던 산이라 별 기대 없었는데 의외로 산행 재미 꽤 괜찮은 산이다.
다만 풀려버린 날씨에 원경 조망 아쉽다. 곳곳 전망바위에서 사방 명산릉들 눈시린 하늘금 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나 실망스럽다.
허나 길지 않은 코스 가운데 마애불 하나 우뚝하여 단조롭지 않다. 모처럼 흥미 동하여 빈곤한 상상력 발동해 본다.
하산길은 서낭고개쪽 예정이었으나 별 생각없이 발자국 따르다 보니 어중간하게 내려섰다.
주포마을에서 올려다보는 미륵산. 암봉이 신선봉. 오른쪽 산줄기는 황룡사 뒷 능선
저 노란 물통 옆에 이정표 있다. 저기서 좌회전해서 야산릉 접어든다.
완만한 솔숲 능선따라 오른다
468봉. 삼각점도 있다.
이 바위, 우회하지 말고 바로 올라야 조망 좋다.
돌아보다
서남쪽.
황룡사 뒤로 오르는 건너 능선이 궁금하다
건너 능선.
내내 멋스런 솔들이 많다.
신선봉에서 돌아보다
숲 사이로 미륵봉
장군봉에서 보는 미륵봉. 잘 생겼다.
돌아본 신선봉
저 이들 서 있는 곳이 바로 미륵바위. 오른쪽 면에 마애불 새겨져 있다.
장군봉 내려서는 눈길 벼랑이 꽤 까칠하다. 조심스레 내려왔지만, 오래 살려면 뒤돌아 우회하는 게 상책이겠다.
미륵봉(좌)과 미륵바위(우)
조망제일 미륵봉에서
미륵바위, 미륵님 머리 위에 앉아 점심 먹으며 돌아보다.
마애불
정교하고 반듯한 통일신라 마애불보담, 파격적이고 투박한 고렷적 마애불이 더 맘에 들때가 많다.
양식만 소개한 안내는 간략하다. 빠진 얘기를 아래에 보충해 본다.
저 미륵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산후 들른 귀래읍내 식당 아주머니 역시 우리더러 미륵님 코를 만져봤냐고 물었다. 그러나 저게 어디 손이 닿을 높이인가?
닿지도 않는데 무슨 말씀이냐고, 혹시 아주머니는 만져봤냐고 물으니, 너무 높아 아무도 못만진다 대꾸하며 깔깔 제풀에 자지러진다.
뭐가 그리 우스울까...?
미륵님 잘생긴 코가? 아님 미륵님 코를 만진다는 상상이 함축하는 그 무엇이?
유교 조선의 가부장 체제에서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건 모든 여성의 엄중한 의무였다.
허나 수태는 성공적인(?) 남녀교합의 결과다. '씨받이'는 괜찮아도 '씨내리'는 용납치 않았던 시대, 불행한 여인들은 수태를 빌기 위해 산을 올랐다. 미륵님을 찾아 미륵님의 코를 만지고(만나고) 왔다.
민속이나 신화에서 코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지금도 마찬가지다. '형부 코가 커서 언니는 좋겠네...^^)
달밤 혹은 들밤(野夜)에 드리는 치성(致誠일까 致性일까). 기능하지 못하는 가부장의 자리를 코로 육화肉化한 미륵이 대신한다.
차가운 돌덩이 앞에 내려놓는 뜨거운 육신. 낮게 놓인 살(肉)은 무겁고도 무거운데, 이몸저몸 떠도는 돌미륵은 한없이 가볍다. 굽어보며 눈 부라라는 미륵. 몸을 떠나서 마음의 평안이나 해탈이 어디 가당키나 하더냐는 불이문不二門의 질문만 허공을 맴돈다.
기독의 성령이 마리아를 처녀잉태시키듯 이 땅의 미륵은 돌의 몸으로 수많은 여인을 잉태케 했다. 부처로 태어났으나 슬프고 우스꽝스런 제도에 사로잡혀 기묘하고 사랑스런 괴물이 되어야 했던 조선의 미륵.
'미륵의 코'는 가부장제의 금기와 빈틈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생겨난 일종의 함정이며 살아있는 구멍이다. 평면적 현실이 사라지는 소실점이자, 억압되고 쫒겨났던 것들이 되돌아오는 곳이다. 거기선 잠시나마 모든 게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미륵 찾기란 일종의 가면놀이다. 사라지고 있는 것이 이미 사라진 것을 대신하는 역할극. 아니, 사라짐 그 자체가 지워진 얼굴을 대신하는 걸까?
실제 아비가 누구였든, 미륵을 만져(만나) 얻은 아이는 열렬히 환영되고 제도의 적자로 편입되었다. 스스로 부과한 규율의 공백지점인 그 함정에 기꺼이 빠짐으로서 제도 자체는 더욱 공고해진다. 체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을 '없거나, 무의미한' 위반과 일탈의 방식으로 포섭한다.
누가 왜 저 미륵을 새겼을까...?
미륵의 코는 드높았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라고 푸념할 때의 그 하늘만큼이나 높았다.
미륵의 이마는 잘려나간 듯 보인다. 아니 하늘이 이마를 베어물고 있다. 아마 그 하늘은 자주 밤하늘이었을 것이다.
별을 딴다는 것,은 중력을 이겨내는 것이다. 제도와 운명의 중력, 제 몸의 중력까지 이겨냈을 때 비로소 미륵의 코를 만지며 여인은 무중력의 시공에 든다. 그 순간, 하늘에 베이는 미륵의 이마. 거기엔 그믐이나 초승달 혹은 굵고 예쁜 별 하나 걸려 있어도 좋을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낳은 중세적 에로티시즘일까? 말 오가는 소통의 길이 다하고서야 열리는 또다른 지평, 거기 걸리는 몸들의 풍경을 상상한다.
미륵바위 윗쪽에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바위 틈새가 있다. 미륵을 만나고, 구멍을 지나, 미륵바위와 미륵봉에 오른다. '미륵'이란 단어에 함축된 통과의례들 같다. 미륵을 만나(만지)고 미륵봉에 오른 여인, 세상을 얻은 듯 득의하며 굽어보았을까? 혹은 그 반대였을까?
귀래 그 식당 아주머니 깔깔 웃음 속을 번개처럼 간질이며 스쳐갔던 건 무엇이었을까? 혹시 저런 거 아닐까?
위 두번째 미륵사진, 바로 아래서 올려다보고 찍은 미륵 사진의 손, 손톱이 유난히 뚜렷하게 그려져 참 거시기하도록 육감적인 손가락 둘.
도드라지게 양각된 코가 너무 높고 굳어 보이니, 차마 손 내밀면 닿을 듯 굵고 퉁퉁한 부처님 가운뎃손가락 같은 거 말이다.
짐작컨데, 코만(!) 만져보러 왔던 여인들,
필시 열에 아홉은 축 처진 저 손가락만 하염없이 쓰다듬다 돌아가지 않았을라나... ㅉㅉ
상호만 당겨본다. 과연 잘 생긴 코다.
그 때 그 시절, 영적 구원이나 해탈을 추구하기엔 이 땅 여인들과 하층민들의 세상은 너무 구체적으로 고달프고 가혹했다.
미륵은 돌부처의 대명사였다. 고매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위해 빌고 또 빌었다.
오늘의 미륵은 무엇일까?
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시 한편 손에 잡힌다.
눈 녹아 파래진 천체가 창가에 떴습니다
당신의 이마를 두드려 숨은 사랑을 꺼내듯
별들을 호출합니다
땅을 뚫고 나오는 뱀들의 머리에 불볕이 일어
오래 냉각된 몸 안의 물살들이 아지랑이로 날아오릅니다
내 몸이 만물 속으로 사라집니다
사라지며 비로소 그늘이 되고 바람이 되어
수천년 살아남은 이끼들의 숨결을 해독합니다
만방으로 번지는 노래 속에
별들이 잘 녹은 설탕처럼
몸 속을 성큼성큼 적시고
읽을 수 없게 번진 문장 속에 펼쳐지는 당신의 우주
망각은 누런 꽃들의 뿌리 속에 단단한 즙으로 흐르지요
그 뿌리를 씹어
피고름에 덮인 죽은 詩나 짜 마셔 봅니다
그리하여 여름이면 산달이 가까워
곱게 실성한 거미떼들이 대낮 허공에 찬란한 별자리를 그려놓을 겁니다
거미줄에 걸린 놈들 중 제일 어둡게 보이는 짐승이
아마도 내 기억 속 가장 먼 곳에서 돌아온 당신의 기별일 거예요
강 정의 <봄밤> 전문
제 이마 두드려 별을 부르고, 언 땅 쿵쿵 밟아 뱀이나 깨울 봄도 멀잖았으니
잊혀진 시대의 유물이느니 미륵은 차라리 저런 꿈이나 꾸지 않을라나.
모든 미륵은 당대의 미륵이므로.
진행방향. 까칠한 암릉구간은 거의 끝난 듯.
헬기장 공터에서 돌아보다
건너 동쪽 십자봉 능선.
오른쪽 저 능선따라 하산이다
뒤돌아본 헬기장봉
헬기장봉 오른쪽 능선
봉림산, 현계산(맨 오른쪽)?
헬기장에서 곧장 새터고개로 가는 능선
미륵산(695봉). 기대와 달리 조망은 전혀 없다.
하산지점에서 건너본 십자봉 능선
오른쪽으로 좀 더 가야 버스 기다리는 새터고개
일행 기다리는 사이 하산주 일배차 잠시 들른 귀래면 소재지.
한적한 시골 거리 풍경이 왠지 낯익고 정겹다. 귀래란 지명도 참 맘에 들어, 혹시 돌아오고 싶은 땅 歸來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귀한 분 다녀가셨다는 貴來다. 신라 경순왕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경주 아닌 강원도 땅에서 만나는 신라인 이야기에 문득 신선함 느끼지만, 다름 아닌 망국의 말왕이라니.
세상 모든 마지막 왕들의 이름엔 어떤 애잔함이 있다. 경순敬順 또한 그렇다.
신왕조 고려에 나라 바치고 조아렸던 기억과, 멸망왕으로 오래 살아남아 영화 누렸던 서글픈(?) 이력이 그 이름의 울림 속에 담겨 있다.
신라왕으로 유일하게 경주에 묻히지 못한 불귀(不歸)의 왕이었던 그가
미륵산 아래 잠시 머물렀던 것만으로 귀래란 지명 생겨나게 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닉한 희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