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대 유감 080921
코스 : 이기리 - 이기령 - 갈미봉 - 고적대 - 연칠성령 - 무릉계 - 주차장(7시간)
이기리 안쪽까지 대형버스도 진입이 가능하긴 하나 상당히 버겁다. 사륜구동 차량이 가장 적당.
좋은 시절에 개인적으로라도 한 번 다녀오리라 별르던 고적대. 마침 모 산악회 코스가 보인다.
제법 맑은 날씨였지만 두타 청옥이 좀 높고 큰 산인가, 이번에도 능선은 구름 속이다.
아쉬움 속에 그나마 고마운 건 올 첫 단풍산행이라 해도 좋을 아름다운 산길.
이기리에서 오르는 임도 끝나자 너른 고개마루까지 이어지는 오솔숲길이 참으로 그윽하다. 계절과 날씨가 다르니 비교하기 뭣하지만, 댓재길보다 느낌이 나았다. 주릉에 들어 고도를 높여가니 노란 빛으로 물들어가는 활엽숲, 내내 황홀이다.
그러나 동해 쪽에서 밀려오는 구름 안개, 심산의 분위기를 더하지만 감질나는 조망의 기대마저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조망없는 고적대를 앞두고 망설이다가 혹시나 싶어...
고적대, 이름 유래를 찾아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높고 적막하단 건가 외롭고 쓸쓸하단 건가. 그도 저도 아니면 불교적으루다 한 경지를 이름인가.
어쨌거나 같은 이름을 쓰는 산봉우리가 이 나라엔 다시 없지 않나 싶은데, 이름으로 보나 고도로 보나 외롭거나 높거나 다 그럴듯하다. 허나 막상 오르고 보니, 기름진 오석 정상돌 한 덩이와 왼갖 잡색으로 나부끼는 리본들이, 그간 왠지 모를 쓸쓸한 매력으로 내 걸음을 유인하던 고적이란 이름과는 자못 거리가 있어 보였다. 수천의 산이 솟아 있는 나라, 정상석 비켜가는 진정 허허로운 정상 한 두자리도 허락치 못하는 비만한 심사들이 문득 못마땅해진다...
빠듯한 시간, 가파른 내림길 들국이 고왔지만 눈길 한번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게다가 나날이 비구름 지척으로 떠도는 고산 준령, 길마저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무릉계 절경들을 주마간산 내달려 허겁지겁 하산. 왕복 10분 신선대는 이번에도 포기했지만 천하일품 무릉계 알탕만은 놓칠 수 없고...
첨 동행한 산악회, 민폐 끼치지 않으려 1분 오차 없이 예정시간에 도착했는데, 개념없는 검프족들 땜에 뒤끝이 영 지저분하다.
미친 듯이 앞만 보고 걷는 건 고질에 이른 산병이라 해도, 일몰과 주어진 시간 무시하고 두타산으로 내지른 용감무식한 무리들이라니! 시간 맞춰 하산한 이들 막막히 기다릴 줄 뻔히 알면서 뭉개버리는 뻔뻔무례함, 랜턴도 없이(!) 낯선 밤산길 감행하는 초절 맹목의 저돌성... 아마 폼만은 히말라야 등반대같던 그 패거리들 같은데 하는 짓은 초보 중에 왕초보다.
얘길 듣고 귀가 의심스러워 잠시 망연했으나, 내 드런 성질과 험한 입이 어딜 가랴... 고적대 조망이 아쉬워도 나름 좋았던 산행, 지루한 기다림 끝에 눈앞에 나타난 치굉이들에게 독설을 날리는 순간 거침없이 망가진다.
예정보다 2시간 늦은 8시 반에 삼척 출발, 대구 도착하니 새벽 한 시. 헐....
영문모르는 남들 눈엔 나 역시 또라이였겠구만.
이기리에서
요즘 좀 가물다. 저 골도 거의 물이 말랐다
마을길 따라가며 보는 이기리 관로 마을 풍경이 정겹다
조망없는 숲길, 능선을 살짝 감돌아가는 여유로움이 길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이기령 직전.
이기령 좀 지나 점심 먹으며 본 솔숲
참나무 고목들이 많이 보인다.
세계 곳곳에서 오래 전부터 신목으로 섬기던 나무... 거대한 참나무에는 위엄과 신비가 깃든다.
갈미봉. 조망은 꽝.
길 옆 전망대에서.
안개바람만 무성할 뿐 전망은 없다. 계절에 물드는 잎들과 흰 들국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울창한 단풍 숲, 제 빛깔로 익으면 참 보기 좋겠다.
조망만 있다면 길 벗어나 기웃거려 볼만한 바위건만...
그래도 가을같잖게 무더운 구월, 첫 단풍산행의 느낌이라 귀한 맛이 있다.